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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치기 욕지도 여행 02 [뱃머리횟집-욕지도할매바리스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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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치기 욕지도 여행 02 [뱃머리횟집-욕지도할매바리스타]

부릿 2023. 10. 8. 22:53

어찌 됐던 잘 왔으면 된 것 아닐까요?라고 말했던 전편의 나를 때리고 싶어졌다. 점심시간이 겹친다는 것을 생각을 못해서 11시에 배편을 예약한 또 나의 탓이다. 배들이 계속 들락날락하면서 육지의 사람들을 욕지도로 실어주고 있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점심을 먹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 먹질 못했다. 게다가 원래 가고 싶었던 횟집이 있었는데 식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모든 테이블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어서 이대로라면 웨이팅만 1시간이 될 듯싶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주변의 모든 횟집을 탐색했는데 어딜 가도 다 만석이며 어디는 또 브레이크 타임이며.. wow. 욕지도의 인기를 실감했다.


말 그대로 뱃머리에 위치한다고 해서 뱃머리 횟집이라고 지은 듯. 귀여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통영 출신의 엄마는.. 회를 안 좋아한다. 그래서 고등어조림 2인분(34,000원)과 고등어회 소자(50,000원), 밥 4개(8,000원)를 주문했다. 기다리면서 아빠는 계속 엄마 눈치를 봤다. 그 이유는 우리 가족은 여행 시 미리 조사하지 못한 가게의 방문에 대한 공포가 조금 있다. 이는 여수 여행으로부터 시작된 공포로.. 이때만 해도 계획의 ㄱ자도 모르던 우리였기 때문에 아빠가 대충 아무 데나 가서 먹자고 했다가 끔찍한 생선구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엄마가 아빠가 들어가자고 하면 불신의 눈빛으로 앉아있는 일이 태반이었다. 그 후 내가 계획한 뒤로는 좀 나아져서 내가 계획한 걸 따라주시는 편인데 그 계획이 틀어졌으니 엄마의 표정이 좋을 리 만무했다.

내부는 그냥 뭐 흔한 통영 옛날 가게 같다. 친근하다면 친근하고 정갈하지 못하다 하면 정갈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애매한 상태의 가게 ㅋㅋ 그래도 점원분이 굉장히 친절하다. 추천도 해주시고 기다려도 주시고 경상도 사나이 같지 않은 나긋나긋한 말투. 좋아요 좋아.

먼저 제공되는 반찬은 생각보다 괜찮은 편. 내 입엔 조금 짰는데 열무, 고사리와 깻잎은 굉장히 괜찮았다. 다들 배고파서 그런지 반찬을 계속 주워 먹었다.

고등어회 소자 등장이요! 소자라서 통영에서 먹은 거처럼 미니미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거의 통영에서 나왔던 것의 4배는 되지 않을까 싶다. 거기다 수조에 살아있는 고등어를 봤었기 때문에 신선도는 말해 뭐 해. 비린내도 안 난다.

이 두툼한 살점이 보이시나요.. 이런 게 고등어회지. 회 안 좋아한다고 말했던 엄마도 한 두 입 드셔보시더니 괜찮다고 했다.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엄마가 맛있다고 했다? 진짜 맛있다는 겁니다. 이래서 욕지도 가면 꼭 고등어회를 먹어야 한다. 통영도 괜찮은데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욕지도가 압도적으로 우승이다.

고등어조림도 생각보다 엄청 맛있었다. 양념이 은근 감칠맛이 나면서도 적당히 매콤한 게 완전 밥도둑이다. 그리고 고등어가 왜 이렇게 커요? 원래 이렇게 큰가? 조금 아쉬웠던 점은 이건 개인 취향인데 나는 무가 완전히 양념 속에서 동화되어 늘어져있는 게 좋다. 젓가락만 대도 숭덩숭덩 잘리는 정도의 익힘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삭함이 약간 남아 있다는 게 아쉬웠다. 안 그랬으면 저 무도 다 먹었을 텐데...

이건 다른 이야긴데 열심히 먹고 있는 와중에도 손님들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죠? 옆테이블에서도 우리와 같이 고등어회와 조림을 시키려고 했는데 고등어가 똑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마지막 고등어를 해치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분들은 아쉽게도 우럭 매운탕을 주문하셨다. 다른 데서 꼭 고등어를 드시길 바랍니다..

밥도 다 먹었고 욕지도 한 바퀴 한 번 돌아보자 싶어서 길이 이끄는 대로 내달렸다. 이 때는 사진을 많이 못 찍었는데 찍었다면 좋았을 듯.. 다도해라는 명칭답게 욕지도 주변에도 수많은 무인도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사이로 햇빛을 반사해서 반짝이는 파도 물결들이 힐링 그 자체였다. 해안 드라이브 강추합니다.


한 바퀴 내달리고 도착한 욕지도 할매 바리스타. 예전에 왔을 때 먹었던 자색고구마라떼가 좋았는데 이번에는 메뉴판에 없었던 듯. 아쉬운 대로 고구마 라떼 아이스로 주문했다.

고구마 파우더 맛이 아닌 찐고구마의 맛! 달달한 맛을 원한다면 그렇게 추천하진 않지만 고구마 본연의 맛을 좋아한다면 맛있게 느껴질 것이다. 그나저나 낙서는 저번보다 더 많아진 것 같다. 벽에는 뭐 이렇게 낙서가 많은지.. 심지어 천장에도 낙서가 가득하다. 어떻게 올라가서 쓴 거야?

가끔 저 카페 앞에 그려진 할머니로 추정되는 분이 보이기도 하는데 허리가 많이 안 좋으신 듯했다. 할머니를 보고 있으니 문득 그 수많은 낙서 중 한눈에 들어왔던 "할머니! 건강하세요!" 문구가 생각났다. 할머니 계속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계속 이 카페에서 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