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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일기

그럴 수도 있지

부릿 2021. 6. 14. 12:00

좋게 말하면 편견 없는 사람, 나쁘게 말하면 주변 일에 무관심한 사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살아왔었던 내 이야기다.

주변 지인들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편견 없이 받아주어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그때는 그런 이미지가 나를 상징한다 생각했다. 나 또한 스스로의 편견 없고 아량 넓은 모습을 좋아했고 주변의 칭찬에 더욱 고취되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게 정말 편견이 없었던 건지에 대한 의문점이 들었다. 나는 그 사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내가 그 일을 당장 결정해야 한다면? 혹은 지인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입장이라면?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점이 연속해서 떠올랐다.

끊임없는 생각의 결과에서 나온 답은 그동안 나는 그 사람들이 하는 생각에 편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어차피 내 일 아니라는 전제가 아주 오랫동안 바닥에부터 깔려 있었던 것이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 그럴 수도 있는 거지.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던 것이 더 컸다는 것도 알았다. 좋은 사람인 양 잘 들어주고, 상대를 위한 조언이랍시고 건넨 말들 한구석에는 무관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엔 스스로에게 실망스럽기도 했다.

최근에는 다양한 사고방식과 삶의 양식 변화로 타인이 나와 다르다고 해도 그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회 분위기로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득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다고 말하기 전 과연 내가 정말로 그 문제에 대해 고찰을 해보고 결론을 내린 건지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를 해봐야 한다. 무언가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나와 같이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삶을 사는 것은 좋은 태도는 아니다. 주관 없이 그럴 수 있다고만 이야기한다면 정말로 필요한 순간에 정작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