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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리뷰] 나의 문어 선생님 My octopus teacher

부릿 2021. 5. 26. 17:21
나의 문어 선생님 (2020)

오래간만에 넷플릭스를 실행했다. 이전에 문어와 교감하는 다큐멘터리가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 나중에 봐야겠다 생각만 하고 계속 미루고 미뤘다. 왜 자꾸 미뤘냐면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눈물을 펑펑 흘린다는 후기 때문이었다. 내가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시간은 주로 밤이고, 자칭 과몰입형 인간이기 때문에 문어한테 과몰입해 눈물 펑펑 흘릴 게 뻔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 주말 낮에 봐야지 하고 말았던 작품이다. 그러다 이렇게 미루다 보면 끝없이 미뤄서 아예 안 보게 될 것 같아 강제로 클릭해서 시청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는 인간의 개입 없이 오로지 관찰만으로 야생 동물의 생활사를 촬영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나의 문어 선생님은 야생 동물과 교감하는 것이 이 다큐멘터리를 관통하는 주제이기에 어느 정도의 개입이 허용되어 있다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감독은 자연에서 외부인이 아닌 자연고 함께 하는 인간이 되고 싶어 했기에 더욱 다른 느낌을 주었다.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서 감독이 자연 속에서 방문자가 아닌 동반자로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이야기했을 때 네모바지 스폰지밥 시즌 1의 나 돌아갈래 에피소드가 생각이 났다. 스폰지밥은 해파리와 친구가 되고 싶고, 해파리 동산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하루도 못 버티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무시한다. 친구들에게 집 안 살림들을 나눔 하고 자신의 상징인 바지, 심지어 팬티까지 벗어던지고 자연으로 향한다. 그러나 야생 동물인 해파리가 스폰지밥과 친해질 리 만무하고 결국 해파리 무리에게 공격당한 뒤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스폰지밥 "난 해파리밥이야!"

나 또한 현대 사회의 인간은 사실상 자연과 분리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독의 생각에 크게 동의할 수 없었다. 이유야 어떻게 됐든 자연을 망친 것은 인간이고 그 사이에 다시 인간이 자연스럽게 섞여있길 원하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스폰지밥이 오버랩되며 감독이 자연 생태계에 개입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감독은 대서양의 다시마 숲에서 유영을 하던 중 이 영상의 주인공인 문어를 만나게 되었고 매일 들여다보며 문어에게 위험하지 않음을 인식시킨다. 그 덕에 문어는 조금씩 경계를 풀게 되고, 후에는 문어가 먼저 접촉을 시도하는 경이로운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때 인터뷰하던 감독의 눈빛에는 기쁨이 벅차오르는 게 확연하게 보였다. 나였어도 문어가 먼저 다가온다는 자체에 엄청난 감동을 받고 그 문어한테 완전히 빠져들었을 것이다.

처음 접촉하는 감독과 문어

넷플릭스 자막에서는 왜문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데 다른 이름으로 돌문어, 참문어가 있다. 넷플릭스에서는 왜문어로 소개하기 때문에 앞으로 왜문어라고 지칭하겠다. 이 둘의 관계를 보고 있으면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곳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바다 속이란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두족류를 좋아하는 파자마상어(캣 샤크)가 항상 왜문어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자마상어가 출몰하여 왜문어를 추격하는 모습은 약육강식의 자연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다큐멘터리 주인공이 왜문어이기때문에 시청자는 이 문어가 꼭 살아남길 응원하는 마음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왜문어 또한 다른 생물을 잡아먹고 살아가야 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연 생태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노출시켜 준다.

파자마상어가 왜문어를 공격해서 다리 하나를 뜯어가려 할 때 감독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혹여나 저 장면에서 개입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봤지만 다행히도 감독은 개입하지 않았고 다리를 잃은 왜문어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며 마음 아파하는 인터뷰 장면만이 나온다. 오히려 왜문어의가 천적을 피하기 위해 보호색을 쓴다던지 패각류를 이용하는 모습 등을 보여줌으로써 문어의 지능에 대한 이야기와 손상된 상처에서 새로운 다리가 천천히 자라는 것을 통해 야생 동물의 치유 능력을 재조명한다.

이미지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12888462

보는 내내 문어보다는 감독의 연구 자세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문어가 놀라서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문어가 없어진 주변을 막연하게 찾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문어의 식습관, 문어의 발자취, 조류의 변화를 공부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문어가 있는 곳을 찾아낸다. 그 모습이 문어를 관찰하고 기록하려는 기본자세가 어느 정도는 있다고 생각했다.

이 다큐의 끝은 문어의 죽음으로 마무리될 것이라 예상은 했다. 천적으로 인한 사망일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닌 새 생명을 품고 키워서 그 끝을 맞이하는 결말이었다. 그 후 태어난 작은 문어가 발견되는데 그때 마음이 조금 찡했다. 사람들이 눈물 없인 볼 수 없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과몰입형 인간치고는 이 다큐멘터리를 제법 냉정하게 보려고 애써서 눈물 폭포가 샘솟는 일은 막았다. 꼭 개, 고양이가 아니어도 어떠한 생명체를 길러 본 사람들이라면 왜문어와 서로 교감할때 받았던 감독의 그 감정이 어떠한 감정인 지를 너무도 잘 알기에 이 다큐멘터리에 더 몰입할 수 있었지 않을까 싶다. 자연과 동반자가 되고 싶다는 말에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본 후에는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정도로는 바뀌었다.

왜문어의 눈이 클로즈업된 마지막 장면이 이제는 낯설기보다 친근해 보이는 건 왜문어가 감독, 그리고 화면 너머 우리에게 전달했던 그 교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