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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월레스와 그로밋 - 거대 토끼의 저주 Wallace & Gromit: The Curse Of The Were-Rabbit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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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월레스와 그로밋 - 거대 토끼의 저주 Wallace & Gromit: The Curse Of The Were-Rabbit

부릿 2021. 6. 17. 15:50
월레스와 그로밋-거대 토끼의 저주, 2005


뜬금없이 달 치즈를 먹는 월레스가 생각이 났다. 월레스와 그로밋은 시리즈가 많아서 어떤 것을 볼지 고민하다 거대 토끼의 저주 편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 토끼가 눈에 들어온 것은 다른 이유는 없고 여기 나오는 토끼가 포코포코의 캐릭터 포코타와 유사하게 생겨 근거 없는 호감이 갔기 때문이었다.


트리노드사의 포코타

줄거리는 월레스와 그로밋이 거주하는 마을에서 레이디 토팅턴이 주관하는 슈퍼 채소 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올해는 유난히 토끼가 들끓어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월레스와 그로밋은 해충 관리 특공대를 결성하여 토끼들을 잡아 해결해주면서 마을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토끼를 잡아서 어떻게 하나 궁금했는데 죽이진 않고 잡아온 토끼들을 모두 그로밋이 관리하고 있었다. 토끼들이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도 다행히 탈출은 안 하는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의 채소들이 자꾸만 없어지고 그곳엔 거대한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괴물과 조우한 신부님은 거대한 발자국의 정체를 거대 토끼라 밝힌다. 마을 사람들이 공포심으로 슈퍼 채소 대회를 열지 못하는 상황이 오자 레이디 토팅턴은 월레스에게 해충 관리 특공대로서 이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뒷 이야기는 직접 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래 문단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앞전 작품을 보았다면 월레스가 발명가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항상 "월레스, 넌 천재야!" 하고 자화자찬을 하지만 실제로 발명품의 대부분이 월레스의 의도와는 다르게 만들어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거의 월레스와 그로밋 스토리의 중추라고 할 수 있겠다.

거대 토끼의 저주 또한 월레스의 발명품에 의해 시작된 사건이다. 토끼가 채식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채소를 싫어하게 만들면 되겠다는 단순 발상으로부터 출발하여 뇌파 조절기를 만든다. 월레스가 채소를 싫어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여 토끼에게 세뇌시키는 뇌파를 허치라는 이름을 가진 토끼에게 실험하게 된다. 항상 본인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찐 광기 발명가다..

그로 인해 허치는 채소를 싫어하는 토끼가 되었지만 기계 오류로 인해 월레스화 되어버린다. 월레스의 옷을 입고 월레스가 좋아하는 치즈만 찾아다닌다. 허치가 월레스가 되었다는 것은 반대로 월레스가 토끼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여기 나오는 거대 토끼는 바로 월레스다! 늑대인간처럼 달이 뜰 때 털 찐 거대 토끼로 변화한다.

그로밋이 슈퍼 채소 대회를 위해 정성 들여 키웠던 거대 수박이 있다. 소중한 수박을 월레스를 구하기 위한 미끼로 삼겠다고 결심했을 때 조금은 마음이 찡했다. 자신이 정성 들여 키운 수박도 소중하지만 더 소중한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이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면서 불편했던 점이 있다. 바로 레이디 토팅턴이다. 토끼가 채소를 다 뜯어먹고 마을 주민들이 불편해하는데도 슈퍼 채소 대회가 가문에서 내려오는 전통적인 대회를 포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귀족이라 그런지 본인밖에 모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팅턴의 저택에 토끼들이 마구 침입했을 때 빅터라는 자칭 토팅턴 약혼자가 총을 들고 토끼를 쏴 죽이려 할 때 "비인도적인 방법은 싫어요!"라고 하며 빅터를 말린다. 그때 월레스가 토끼를 빨아들이는 거대 진공청소기를 가져와 마당의 토끼들을 생포한다. 토팅턴은 손 안 대고 코 풀면서 토끼가 골치 아프지만 죽이는 것은 안된다며 선한 이미지를 어필한다.

그러나 막상 거대 토끼 때문에 슈퍼 채소 대회를 정말로 개최하지 못할 상황이 오자 생각이 바뀌었는지 빅터에게 거대토끼를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자신한테 해가 없을 때는 죽이지 마세요. 해가 되니 죽여주세요? 그 후 빅터가 거대 토끼를 사냥하는데 실패해서 돌아왔을 때, 사냥에 성공한 줄 알고 토끼가 아프지 않게 갔냐고 엉엉 우는 모습이 볼썽사나웠다.

마지막에는 많은 토끼들을 토팅턴의 집에서 다 키우겠다고 하는 훈훈한 마무리로 끝났지만 그 토끼들은 이전처럼 채소 먹는 토끼가 아니라 월레스의 기계에 세뇌당한 채소를 먹지 않는 토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행적을 봤을 때 레이디 토팅턴은 참으로 이기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레이디 토팅턴이 조금 거슬리는 것 이외에는 꽤 재밌게 본 애니메이션이다. 여전히 사고뭉치인 월레스, 뒷수습은 항상 그로밋이 하는 이 패턴. 익숙하지만 재밌는 패턴이다. 시간 난다면 이 귀여운 작품을 꼭 봤으면 좋겠다.